중앙그룹 선배들의 PD 이야기, 이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예능, 교양, 시사, 뉴스 등 JTBC의 다채로움을 만들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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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수
    PD 9기
    기대했던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도망치듯 유럽 여행을 떠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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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석
    PD 8기
    주변 사람들에게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중 3때부터 얘기한 꿈을 이뤘네”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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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렬
    PD 7기
    아직 햇병아리도 되지 못한 제가 선배로서 글을 쓰자니 민망함에 손가락이 바들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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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 7기
    필기 전형 작문 시험지를 받아든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소설 같은 글이 아닌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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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슬우
    PD 7기
    “어떤 사람들이 PD가 되는 거야?” 입사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지만, 번번이 대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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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주성
    PD 6기
    태블릿 PC 보도, 탄핵, 그리고 대선. 지난 1년여간 우리 사회 굵직한 일들의 한복판엔 JTBC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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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 6기
    PD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충분한 각오도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PD는 상상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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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은
    PD 6기
    ‘도망쳐.’ 99%의 확률로 여러분은 이 답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주변의 PD에게 ‘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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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 있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 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단 말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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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 공채 준비생 시절, 제게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편집실에 틀어 박혀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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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 can like the life you’re living, you can live the life you like."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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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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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스님이 책에 쓰신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나는 내가 남자라는 것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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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 2기
    “해녀여도 괜찮아!” PD지망생이었 던 시절, 여자PD는 결혼정보업체 의 배우자 인기순위 44위라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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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 2기
    입사한 이래 제 휴대폰 배경화면 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가 적힌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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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이상한 회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류와 필기 전형 과정 그 어디에 도 방송에 관한 전문성이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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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인생을 거대한 바둑판에 비 유한 만화를 읽고 있습니다. ‘이미 둔 수는 절대 무를 수 없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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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뜨고 버틴지 24시간 째. 편집실 의 공기는 매캐합니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편집기 모니터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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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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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지를 받는 순간, 나는 눈을 의 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문'이라 고해서 기존과 똑같은 글쓰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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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다고요? 늦은 것은 당신의 결 심뿐입니다” 저는 한때 5년차 대 기업 직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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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오른쪽
  • 기대했던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도망치듯 유럽 여행을 떠날 참이었습니다.
    잠시나마 멀리 떠난다는 도피가 만든 용기였을까요, 불현듯 갑자기 PD 지원서를 쓰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PD가 '꿈'이 되어본 적 없었던 제게는 더욱이요.

    평소 쓰던 존댓말도, 유능한 인재인 척 풀어놓던 일화들을 모두 지우고 '나'의 이야기로 첫 줄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래서 왜 PD가 되어야만 하는지.

    투박하기 짝이 없는 그 글이 수백 개의 지원서들 중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처음으로 솔직했던 그 날의 용기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가슴 뛰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소서, 거짓과 진실 그 사이, 환상과 현실 그 어디쯤의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문득 지난 삶을 반추하게 됩니다.

    몇천 자가 넘는 글자를 지우고 쓰며 제가 스스로 깨달은 한 가지는 “나는 좋아하는 ‘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JTBC는 그 누군가의 가장 진솔한 모습을 발견할 줄 아는 곳이라고 믿습니다.

    가장 뚜렷한 목소리로 쓰여 내려갈 여러분의 이야기를, 함께 동료로서 나눌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 주변 사람들에게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중 3때부터 얘기한 꿈을 이뤘네”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PD가 처음 되기로 했던 순간을 저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합니다만, 증언에 따르면 아무래도 그 때쯤인 듯합니다. 그 시절의 장래희망은 시시각각으로 바뀌기 마련이지만, PD라는 직업만은 일관되게 멋진 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는 방송부를 했고, 대학교는 미디어 관련 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관련 경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고, 경험을 쌓는다고 공부하고 놀고 숱하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외길(?)만 걸어온 결과 JTBC라는, 바라마지않던 직장을 가지게 되었으니 누군가는 “상석아,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라고 말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PD가 되기 전까지는. 여러 선배가 이미 말씀하셨듯이 이 일은 분명 힘든 일입니다. 늘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며, 시시각각으로 저의 일거수일투족이 평가받는 일입니다. 업무량은 많고, 실수는 잦고, 제가 바랐던 “멋진 PD”로서의 저의 모습은 아득히 멀리 있습니다. 중 3 때의 제가 이런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입니다. TV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이상 세상의 중심에서 일하는 일이고, 그 안에서 자신과 싸워나가며 성장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하는 일입니다. 위로하는 일입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세상을 다소나마 바꿀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흔치 않고, 저는 운이 좋게도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준비할 것도 많고, 마음의 짐도 크겠지만, 자신감을 잃지 마세요. 가장 평범한 당신의 모습으로 매일을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비범해져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우연히 만나 한솥밥을 먹는 인연이 될 때까지, PD 1인으로 상암동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많은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 아직 햇병아리도 되지 못한 제가 선배로서 글을 쓰자니 민망함에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립니다. 그래도 이 회사에서는 제가 이 글을 읽는 예비 후배 언론인님들과 제일 비슷한 상태일 테니, 저의 개인적 경험과 생각들이 미미한 도움이나마 되길 바랍니다.

    많이 어렸을 때부터 TV뉴스나 신문을 보며 세상에 대해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저희 아버지는 제가 행여 사회 부적응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죠. 시사PD는 예능PD와도, 교양PD와도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 같은 투덜이의 좋은 점을 인정해주었던 것을 보면요. 개인적 생각으로는, 기왕이면 지금 이 세상이 본인과 잘 안 맞아서 불편한 분들, 뉴스에서 나쁜 놈이나 억울한 사람을 보면 울분이 차는 분들이 이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일은 많이 힘듭니다. 힘든 걸 모르시는 분이야 없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은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편집 주에는 몸에 피가 아니라 핫식스가 돌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요즘 같은 땡볕에서 뛰어다니다보면 한반도의 뚜렷한 사계절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정신없이 일처리를 해도 늘 이가 빠져있고, 눈앞이 아득해질만한 실수를 반복하다보면 스스로의 적성과 능력에 대해 깊이 고뇌하기도 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물정 탓에 애써 취재한 결과물들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병아리 손 하나 보탰다는 보람만큼은 굉장한 것 같습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무사히 방송 한편 내보낸 후, 스크롤에 들어있는 이름 석 자 보면 그 성취감이 이루 말하기 어렵습니다. 마약 같다고 한 분도 있었는데, 참으로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합니다.

    밖에서 보았을 때 시사PD는 참 멋진 직업이었습니다. 안에서 선배들을 보니 단순한 멋짐 그 이상이더군요. 저처럼 탐사보도, 언론인, 시사PD, 이런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이곳에서 그 뜨거운 욕심 푸셨으면 합니다. 잘 되는 조직엔 분명 이유가 있구나 느끼는 요즘입니다. 지금 바라는 담대하고 멋진 언론인의 꿈을 여기서, 저와 함께 이뤄나가셨으면 합니다.
  • 필기 전형 작문 시험지를 받아든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소설 같은 글이 아닌 ‘나 자신’이 주인공인 ‘내 이야기’를 쓰라는 문제였습니다. 제시어에 준비해 간 글을 맞춰 쓸 수 있는 뻔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왜 이리 재미없게 살았을까’ 따위의 의미 없는 자책들로 시험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결국 나의 노안(老顔)을 셀프디스하며 정신승리를 시전하는 글을 쓰고 나왔습니다. 뻔히 탈락이 보였지만, 뻔하지 않게 PD가 되었습니다.

    JTBC의 PD로 입사한 이후 전혀 뻔하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달에 60분이면 많이 썼던 휴대폰 통화량이, 해외촬영 준비로 600분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촬영 스태프부터 항공사 직원, 하물며 일반인 출연자의 부모님과의 통화까지... 600분의 통화에 어눌한 말솜씨도 조금은 나아진 듯합니다.

    매주 촬영장에서 평범하지만 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유난히 춥던 겨울날 만난 90대 노부부에게서는 청춘 드라마 뺨치는 러브스토리를 듣게 됐고, 햇살 좋은 봄날 만난 30대 원룸 청년에게서는 ‘소확행’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가 이제는 뻔하지 않은 스토리로 들려옵니다.

    물론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신나지만은 않습니다. 매주 하는 편집이지만 선배들에게 혼도 나고 스스로 자책하기를 반복합니다. 자신 있기만 했던 체력의 한계를 맛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뻔하지 않기에 매번 새롭고 즐겁습니다. (정신승리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평범하지 않지만 즐거운 일,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함께할 지원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뻔하지 않은 여러분의 이야기와 함께 JTBC PD에 도전해주세요!
  • “어떤 사람들이 PD가 되는 거야?”
    입사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지만, 번번이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제가 PD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학부 시절의 저는 광고인을 꿈꾸던 학생이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광고 동아리에 들어갔고, 광고 공모전에 수없이 도전했으며, 두 번의 광고 홍보 대행사 인턴까지 경험했습니다. 누군가 제게 진로를 물을 때마다, 저는 광고회사에 취직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JTBC에서 일하는 막내 조연출입니다. 혹자는 기적이나 우연이라 할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간 제가 광고를 준비하며 쌓아온 ‘경험치’들이 PD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한 광고를 하기 위해, 저는 닥치는 대로 ‘경험’하려 발버둥 쳤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PD로 일하는 지금, 제게 가장 큰 자산이자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예고편에 사용할 음악을 고르거나 자막 한 자를 쓰는 것에서부터,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제게 가장 큰 기댈 곳은 바로 ‘경험’이었습니다. 입사 6개월을 갓 넘긴, 햇병아리 수준인 지금의 제가 이만큼 느낀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더 많이 느끼게 될까요.

    “어떤 사람들이 PD가 되는 거야?”라는 질문에, 이제는 감히 ‘경험치가 많은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제가 광고를 향해 경험을 쌓았듯, 방향이 다를지라도 그 경험은 언젠가 PD로서의 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지금 걸어가고 있는 여러분들만의 그 경험 말입니다.
  • 태블릿 PC 보도, 탄핵, 그리고 대선. 지난 1년여간 우리 사회 굵직한 일들의 한복판엔 JTBC가 있었습니다. 각각의 사건들은 제 입사 첫해의 업무 기록이기도 합니다. 휴일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특보, 탄핵이 가결된 날 곧바로 준비했던 긴급 토론. 그 어느 때보다 열띤 논쟁이 있었던 대선 후보 토론회까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뛰어다녔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JTBC와 함께하고 싶다”라는 초심에 “힘들다”라는 생각이 비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보상이 있었습니다. 제 고민이 방송에 반영되는 것을 볼 때의 성취감.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뿌듯함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성취감과 뿌듯함은 모든 고생을 날려버릴 만큼 달디 달았습니다.

    시사교양 PD로서 살아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저에게, 시사교양 PD가 어떤 일이냐고 물으신다면 “‘다음’을 알 수 없는 직업”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아니 잠든 와중에도 새롭게 쏟아지는 소식들. 그 뉴스들 속에서 ‘다음’은 애증의 단어입니다. PD로서 어떤 뉴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머리를 싸맸던 고민은 다음 순간 터지는 뉴스에 의미 없는 것이 되곤 했습니다. 반면 제가 만든 CG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슈에도 유용하게 활용되는 즐거운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사교양 PD가 “’다음’을 알 수 없는 직업”인 것은 시사교양 PD가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게 결국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삶이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삶을 들여다보고 스토리를 만들어 전달하는 시사교양 PD의 ‘다음’도 당연히 모르는 것 아닐까요? 시사 프로그램이든, 교양 프로그램이든 간에 말입니다.

    이 매력적인 시사교양 PD라는 직업이 JTBC에서는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변합니다. 언제든 고민을 함께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배들과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하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덕분입니다. 여기에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열정 넘치는 분들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요?

    물론 험난하기 그지없는 입사 과정을 먼저 거쳐야겠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각종 시험 정보와 요령들 사이에서 딱 두 가지만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다른 삶에 대한 관심 잃지 말기’, ‘내가 PD라면 어떻게 할 지 고민하기’ 전자는 작문과 기획안, 실무면접에서 남들과는 차별화되는 소재를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세였습니다. 후자는 그 소재를 더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우리들의 ‘다음’ 이야기가 JTBC에서 펼쳐지기를 기대합니다.
  • PD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충분한 각오도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PD는 상상 그 이상을 맛볼 수 있는 직업이다. 야근이 많은지, 몇 시쯤 퇴근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몇 번 퇴근할 수 있을까?” 가 궁금해지는 직업이라니...

    체력적으로 적응하고 나면 창작의 고통이 다가온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느껴가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PD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대답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

    나 역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힘듦을 이겨낼 원동력을 성취감에서 얻고 있다. 밤새 편집한 부분이 TV 화면에서 흘러갈 때의 짜릿함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방송이 끝나고 예고가 흘러가면 지난 일주일 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은 리셋 되고 이번 주에는 어떤 패러디를 할까, 이번에는 무슨 효과를 쓸까 하는 고민들로 다시 한 주를 채워간다. 이 재미는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평생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에 PD를 꿈꾸는 많은 예비 후배들에게 과감한 도전을 권해본다.
  • ‘도망쳐.’
    99%의 확률로 여러분은 이 답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주변의 PD에게 ‘내 꿈은 PD’라고 이야기한다면 말입니다. 그 말 속에 진심이 아주 없진 않습니다. 3일째 밤샘 중인 새벽 3시의 편집실 안이라던가, 세팅이 안 됐는데 5분 안에 슛 들어가야 하는 혼돈의 촬영장이라던가, 우리도 잊지 말라며 설거지처럼 쌓여주는 서류작업들 속에서 그 ‘도망쳐’는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외치는 마음의 소리니까요.

    그런데 참, 그 말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돌아서려 하면 떠오르는, 이 일을 하며 마주쳤던 ‘어떤 순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촬영장에서 만난 한 할머님이 ‘고마워, TV가 가족도 되고 친구도 돼’라시며 손을 꼭 잡아주셨던 순간, ‘방송 보고 아빠가 크게 웃는다. 저렇게 행복해하는 아빠 모습 처음 봐’라는 시청자 피드백을 받았던 순간... 그런 순간들이, 도망칠 이유보다 훨씬 더 큰 ‘남을 이유’가 되어줍니다. 처음 이 길을 택했을 때 나의 목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기에. 그 목표로 향하는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단 확신을, 그 순간들을 통해 받았기에... 그렇게 돌아서던 발길을 멈추고, ‘그래, 나 이러려고 PD 했지’라며 뜨거운 현장 속으로 다시 온몸과 마음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알아? 요즘 밖에 엄청 덥대.’
    ‘그래? 우리가 여기서 나갈 때쯤엔 선선해져있겠지.’
    폭염이 연일 이어졌다던 지난 여름, 함께 일요예능의 막내로 일하고 있던 동기와 편집실에서 나눈 대화였습니다. 현재시각 2017년 9월 10일 밤 11시 38분. TV에서는 제가 JTBC에 입사해 처음 몸담은 프로그램의 마지막회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열어둔 창문 사이론 정말 가을을 알리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있고, 단 하루 뿐이었던 휴일도 끝나가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는 새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엔 아마 겨울의 한 가운데에 있겠지요. 나의 계절은 그렇게 편집실 안의 달력 사진으로만 흘러간다 해도, 나의 젊음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또 하루를 이곳에서 보낼 것입니다. 같은 믿음으로 이 길을 함께 걸어갈 분들, ‘도망쳐’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을 이유가 있는 모든 분들, 도전해 주세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재능 있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단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운을 띄웠습니다. 면접관분들의 표정이 굳어갔습니다. 설마 그 뻔하디뻔한, 무려 2500년 전의 명언으로 면접과 함께 채용기회도 마무리할 생각인가? 거친 생각과 함께 불안한 눈빛으로 저를 지켜보던 면접관분들께 저는 당차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면서 심지어 즐기기까지 하는 천하무적입니다!”

    저의 뻔뻔한 한마디에 면접관분들 사이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직 입사도 안 한, 햇병아리 같은 제가 족히 수십 년의 연차를 가지신 베테랑 선배님들께 꺼내기엔 감히 낯부끄러운 ‘근자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당당했습니다. 저를 가장 잘 표현하는 구절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저는 ‘즐기는 자’였습니다. 이는 PD가 되고자 하는 꿈에 탄탄한 베이스 역할이 되어주었습니다. 여덟 살의 꼬마일 때부터 저는 직접 동화책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그 과정에 콘텐츠 제작의 묘미를 알게 됐습니다. 제 작품을 만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제가 느낀 즐거움을 수많은 사람, 즉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송PD가 돼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노력하는 자’가 됐습니다. 방송 제작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력이 뒤따랐습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든 참여하고자 했습니다. 능력은 노력에 수반되어 조금씩 ‘재능 있는 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래보다 조금 탁월하다고 자신했던 재능은, 물론 회사에 들어오는 순간 리셋입니다. 입사한 지 몇 개월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머릿속을 다 비우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다시 PD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중입니다. 베이스는 언제나 ‘즐기는 자’입니다. 아무리 업무 강도가 높더라도, 새롭게 모든 걸 배워야 하는 환경이 낯설더라도, 방송을 만드는 일 자체가 즐거우므로 PD는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다대다로 진행되는 최종면접이 끝나갈 무렵입니다.저를 포함한 지원자들이 방송에 대한 열정과 포부를 쏟아붓고 면접장을 나서는데, 뒤에서 한 면접관분이 껄껄 웃으시면서 얘기하셨습니다. “PD면접이 확실히 재미있네!” 비록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면접임에도, 방송을 즐기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만큼은 숨길 수 없었나 봅니다.

    진정으로 방송일을 즐길 자신 있는 분들은 언제든 JTBC의 문을 두드리시길 바랍니다. 즐기는 자가 결국에는 노력하는 자고, 재능도 있는 ‘천하무적’이 될테니까요.
  • PD 공채 준비생 시절, 제게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편집실에 틀어박혀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차가운 새벽 공기 마시면서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던 저만의 로망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요즘 일주일에도 몇 번씩 꿈을 이뤄내는 기적을 행하고 있답니다. 피곤함에 지친 와중에도 불현듯, 준비생 시절 그토록 갈구하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짜릿한 기분이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방송국은 엄연한 회사입니다. 제조업에 비유하자면 제가 속한 곳은 ‘예능’이라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그리고 마치 자동차 제조업체가 신제품 출시 직전에 테스트 드라이브를 하듯이, 저희도 ‘시사’라는 이름의 시범운행을 합니다. 

    “푸하하하하, 깔깔깔깔깔!”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사실에서는 여지없이 폭소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제품을 보며 이렇게 웃을 수 있는 회사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물론 이런 웃음 속에는 준비생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땀과 노력이 배어있다는 사실도 이 회사의 또 다른 매력일 겁니다.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곳. 신나게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뜨거운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곳. JTBC로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You can like the life you’re living;
    you can live the life you like. “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Chicago>에 나오는 가사 중 한 마디입니다. 당신은 현재 살고 있는 삶을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아주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과연 세상사람 중 몇 명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어떤 게 내 피를 끓게 하는지, 어떤 게 내 심장을 뛰게 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JTBC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그 숫자에 속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운 좋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좋은 PD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상,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요.

    JTBC는 능수능란한 언론고시생들보다도 어딘가 부족하지만,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정해진 틀 속에 갇혀있지 않고 대담무쌍 하게 색다른 걸 시도해볼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누군가에게는 한국적 정서가 턱없이 부족해 보였을 제가 그랬으니까요.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었던 저의 특이한 배경을JTBC에서 좋게 봐주셨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당신 또한 익숙함보다는 새로움, 경력보다는 경험, 불가능보다는 용기를 더 추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지원하세요. 그리고 이 회사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이 일을 하고 싶은지를 마음껏 보여주세요.

    ‘내가 과연 좋은 PD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을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일하고 있는 모든 PD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 고민은 밤샘 후 이른 새벽에 지하 편집실에서 저희와 함께 웃는 얼굴로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어떤 스님이 책에 쓰신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나는 내가 남자라는 것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여러분들이 저보다 모르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PD라는 직업의 매력과 장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인데 굳이 제가 하나 하나 서술하며 설득하려 하면 오히려 PD의 당연한 매력과 장점이 퇴색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미 훌륭한 선배님들이 바로 이 홈페이지에도 PD란 무엇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정말 잘 써 주셨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방송사도 아닌 바로 ‘왜 Jtbc의 PD인가’입니다.  PD는 프로그램을 창조하고 만들어나가는 예술가입니다. 흔히 예술가는 고독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PD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입사를 하고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 하나 챙기면서 가르쳐주면서도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PD 선배들, 어쩌다 마주치면 안부부터 묻고 언제 한 번 술이나 한 잔 하자는 따뜻한 동기들. 나아가 촬영 현장에서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도와주는 여러 스텝 분들이 항상 저와 함께였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실력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여타 방송사가 아닌 Jtbc의 PD로서 일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또 한 가지 장점은 바로 Jtbc의 최고 가치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신뢰’입니다. 얼핏 단어만 들으면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나중에 훌륭한 PD로 성장해서 드디어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할 때 내가 발디디고 있는 직장에서 그것을 아낌없이 믿어주고 후원해주지 않는다면 PD라는 직업의 자유로움과 예술성은 의미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리 PD라는 일을 하고 있어도 제대로 된 후원과 믿음을 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프로그램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도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신뢰’ 라는 가치를 으뜸으로 하는 이 Jtbc에서 PD의 꿈을 펼친다는 것은 좀 더 자유롭고 넓은 평원에서 우리의 머릿속에 든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을 펼쳐나갈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PD가 아니라, Jtbc의 PD인 것입니다.
  • “해녀여도 괜찮아!”

    PD지망생이었던 시절, 여자PD는 결혼정보업체의 배우자 인기순위 44위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얘기라며 친구들과 한참을 깔깔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JTBC에 PD로 입사한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저는 그 얘기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 된 친구들이 퇴근 후에 쇼핑하고 커피 마시러 다닐 때, 며칠씩 집에 못가 꼬질꼬질한 몰골로 지하 편집실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게 제 모습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매일 매일이 이렇게 재미있고 벅찬 경험들의 연속인데 말입니다. 어느덧 입사한지 1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지만 PD로서의 삶은 아직도 제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 투성이입니다. 가끔씩 불리는 김PD라는 호칭은 아직까지도 들을 때마다 제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밥과 잠을 포기하고, 매일 같이 촬영 현장으로 편집실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도 제가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일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PD가 결혼정보업체에서 높이 쳐주는 훌륭한 직업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재미있고 행복한 직업임에는 분명합니다. 밥과 잠과, 좋은 배우자감이 되기를 포기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은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분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JTBC의 문을 두드려보세요.

    먼저 JTBC에 입사한 선배로서 팁을 한 가지 드리자면, JTBC는 잘 다듬어진 언론 고시생보다는 손에 쥔 것이 없어 오히려 용감한 지원자들에게 더 유리한 곳입니다. 제가 그랬고 저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이 그랬으니까요. 서류와 필기 전형에서는 매끈한 글 솜씨보다 좀 거칠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면접 전형에서는 유창한 언변보다 소신과 진심을 담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세요. JTBC라면 분명 당신의 부족한 점 뒤에 가려진 뜨거운 열정을 봐 줄 것입니다!
  • 입사한 이래 제 휴대폰 배경화면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가 적힌 합격 발표 창은 도대체 언제 바꿀 거냐는 핀잔을 종종 받기도 하지만, 화면을 확인할 때마다 즐길 수 있는 몽롱함(?)을 포기하긴 싫습니다.

    '좋아요'가 100이 넘어갔던 본격 합격 자랑 글은 종종 댓글까지 다시 찾아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 속에서 짜릿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온 몸의 털을 쭈뼛쭈뼛 서게 만들기 일쑵니다.

    애정 결핍자, 관심병 환자, 그리고 변태까지. 대개 좋지 않은 의미로 통용되는 이러한 호칭들이 JTBC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겐 칭찬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눈 속에만 담아왔던 사랑스런 사람들의 모습을 이제는 직접 프로그램에 담아내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수많은 스텝들의 관심과 애정을 온 몸으로 즐겁게 소화시킬 수 있는 변태성.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그 내용이 되었든, 과정이 되었든 이러한 많은 이들의 욕구를 그들 모두와 함께 있는 힘껏 취할 수 있는 준비가 되셨다면 여러분은 이미 충분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JTBC에서.
  • 좀 이상한 회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류와 필기 전형 과정 그 어디에도 방송에 관한 전문성이나 지식을 묻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다른 회사들은 방송학도 공부하고 상식도 공부해야 한다고 하던데. 저에겐 다행이었습니다.  전까지 방송이라고는 전혀 몰랐습니다. 준비는 짧은 스터디 두어달이 전부였고, JTBC가 첫 시험이었습니다. 

    운 좋게 올라간 면접을 치르며, 이상한 회사라는 생각은 굳어졌습니다. 열심히 기획안을 써서 갔는데, 면접관분들은 제게 옷이나 머리 등 개인적인 엉뚱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기획안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셨습니다. 참 이상한 면접이었습니다.

    운 좋게 입사를 하게 돼서, 경영진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영진께서는 밖에서 보기엔 ‘저런 사람도 회사를 다녀?’ 라고 말할 정도로 이상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JTBC 안에서는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JTBC는 정말 이상한 회사였구나. 

    JTBC가 그 사람이 당장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 할 수 있는지 보는 회사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PD 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도 한참 모자라지만 날마다 PD로서 채워져가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PD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JTBC라는 곳은 좋은 PD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뽑는 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좀 이상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면 도전해 보는 걸 추천합니다.  주눅들지 말고 자신의 이상함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JTBC는 현재가 아니라 가능성을 보는 곳이고,  그 가능성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까요.
  • 요새 인생을 거대한 바둑판에 비유한 만화를 읽고 있습니다. ‘이미 둔 수는 절대 무를 수 없다는 점’에서 바둑이 인생과 닮았다는 게 참 흥미롭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 수 무르고 싶은 제 1년 전 모습… PD가 되고 싶다는 일념만으로 벌인 제 만행(?)을 합격 수기로 작성하고자 하니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대국자 입장에서는 창피하지만, 그래도 제가 수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제 기보(棋譜) 한 자락을 들춰보고자 합니다.


    작년에 출제됐던 PD직군 문제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사, 물건, 가게, 소프트 웨어 등 제품에 상관 없이 어떤 것을 자유롭게 팔아보아라>, 그리고 A3사이즈의 큰 백지를 몇 장 나누어 주셨죠. 문제는 분명 창의력을 묻고자 하는 문제였을 겁니다. 저와 함께 합격한 동기들의 수기를 들어보아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전 그 자리에서 편지를 쓰고 왔습니다. 물론 심사위원들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왜 PD가 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문제라고 해석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백지에 ‘저’를 그리고 나왔습니다. 집 앞 초등학교에 걸린 시 한 구절, 며칠 전 보았던 영화 상실의 시대, 대판 싸웠던 친구의 얼굴… 내가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잡다하게 섞인 말도 안 되는 편지 한 장을 꾸역꾸역 써 내려갔습니다. (물론 그 글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감정덩어리였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내 생애 마지막 편지라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비록 글 솜씨는 없을지언정 ‘메시지’는 통할 거라는 제 순진한 생각이 적중하길 바라며 간절히 썼습니다.

    이어진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그때 전 제 인생을 전부 걸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몇 십 년을 방송계에 몸담아오신 국장님, 선배님들 앞에서 제 말은 어쩌면 우스운 새내기의 허풍으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수일지도 모릅니다. 열정만 갖고 덤볐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여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검은 돌, 흰 돌의 한 수 한 수 어떻게 얽혀 들진 초수만 보면 알 길이 없습니다. 때론 상대편이 장악해버린 분위기에 휩쓸려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한 수를 놓기도 합니다. 나중에 뒤돌아보고 나서야 후회하게 되는 법이죠. 그렇지만 저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 잘못 놓은 한 수가 언젠간 징검다리가 되어 제대로 된 집 하나 짓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모든 발자취가 모여 제법 그럴 듯 한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의 접착제는 ‘열정’과 ‘자신감’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건 저 두 가지 무기밖에 없었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보여주지 못하면 끝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나한텐 뭐가 없어도 언젠간 뭐가 생길 거라는 근.자.감으로/ 도전하세요. 그리고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눈뜨고 버틴지24시간 째. 편집실의 공기는 매캐합니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편집기 모니터와의 오랜 눈싸움 끝에 얻어낸 것은 모니터 속 소녀시대와의 대화법입니다. 입사 전에 본 PD들의 머리는 모두 장발이었습니다. ‘아, 역시 창작 하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했던 그 동경의 머리가, 이제와 보니 그냥 안 깎아서 자란 머리였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그러나 입사 전과 후에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일의 ‘즐거움’입니다.

    일(work)이 일(labor)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이, 도무지 노동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즐거웠기 때문에 밥 때도 놓쳤고, 잠자는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모니터만 바라본 채 말이죠(머리는 그냥 안 깎아서 자란 게 맞습니다). 저와 동기들, 그리고 선배들 모두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정신 상태로 무장한 채 하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조각상에 사랑을 품고, 끝내 사람이 된 조각상과 사랑 할 수 있었던 한 석공(石工)의 이야기.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을 아십니까? 어쩐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나요? JTBC의 비전은 ‘아시아 대표 방송’입니다. 갓 돌이 지난 회사의 비전치고는 거창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열정과 즐거움을 가지고 이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도전합니다. 마치 피그말리온처럼 말이죠.

    당신도 피그말리온 입니까?
  • 시험지를 받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문'이라고해서기존과 똑같은 글쓰기만을 준비했었던 나는 망치로 머리를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상품을 디자인하고 또 그것을 설명하는 광고를 만들라니! 난 누군가또 여긴어딘가. 총 5차까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작한 회사 생활역시 놀람의연속이었다. 새 것냄새 가득한 회사 건물안에서 나와 동기들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만 했다. 동기 중에는 편성운행, 교양, 예능, 스포츠(?)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아우른 사람까지 생겼으니, 이 회사 참 다이나믹하다.

    연예특종 프로그램하면서직접 리포터로 얼굴까지 내보낸 친구들, 그리고 입사한지 얼마안되어 건방지게(?)더빙하면서 큐사인 주는 나까지. JTBC의 신입 피디들은 정말 다이나믹한 한 해를 보냈다.

    우리가 만일 다른 회사에 갔으면 이런일을 할 수 있었을까?
    PD를 꿈꾸는 후배들에게JTBC는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단, 들어올땐 마음대로지만 나갈때는 아니란다.ㅎㅎ)
  • “늦었다고요? 늦은 것은 당신의 결심뿐입니다”

    저는 한때 5년차 대기업 직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2년차 막내 조연출입니다.

    서른 한 살의 여름은 유난히 치열했습니다. 서너살 어린 친구들과의 경쟁이 결코 쉽지는 않았죠. 3번의 면접 때마다 들었던 질문은 ‘왜 편한 길을 마다하고 힘든 길로 오려 하느냐’, ‘어린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겠냐’, ‘부모님은 너의 무모한 결정을 알고 계시냐’ 등등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결혼했느냐’라는 질문까지... 서류전형, 필기시험과 3번의 면접까지 거치고 나서야 제 핸드폰에 ‘최종합격하셨습니다’라는 문자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서른한 살의 늙은(?) 신입 PD가 되었고, 그 나이덕에 통합공채 1기 기장이 되었습니다.

    왜 PD가 되고 싶었냐구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란에 단 한번도 PD를 써보지 않았던 적이 없었거든요. 여러 번의 실패를 거치고 ‘아.. 난 결국 이렇게 훌륭한(?) 회사원으로 늙어가는구나’라고 느끼며 살아가던 어느 날. JTBC가 제 가슴 속으로 들어와 식어있던 제 심장에 불을 댕기고 말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난 인연입니다. 전 직장의 사무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중앙일보 빌딩의 J자가 딱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1차 면접에서 이선희의 ‘J에게’를 불렀고, 이후 모 행사장에서 공채 1기 동기들과 함께 다시 한 번 ‘J에게’를 불렀습니다. ‘J. 난 너를 못 잊어’라는 그 가사처럼 PD에 대한 저의 바람은 잊혀질 수 없는 것이었나 봅니다.

    지난 1년의 시간. 한 사람의 시청자에서 한 사람의 PD로 거듭나기(아직 많이 부족하지만)까지의 하루하루는 정말 경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TV에서만 봐오던 연예인들. 기사로만 접하던 유명한 선배 PD들. 화려한 조명과 무대. 그리고 녹화 직전의 그 치열한 긴장감까지... 이 글을 읽고 지원 버튼을 누르는 당신은 세 가지 이유에서 그 누구보다 행운아입니다. 첫째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직업인 PD를 자신의 평생 꿈으로 삼았기 때문이고, 둘째로 늦은 나이에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PD가 된 제 후기를 보고 힘을 얻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들어오고자 하는 이곳이 당신과 내가 함께 만들어갈 젊은 JTBC이기 때문입니다.

    PD라는 직업이 주는 가장 큰 카타르시스는 내 머리 속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혹은 매일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보며 울고 웃을 때, 인간의 ‘말’로는 완벽하게 포장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느끼기 어려운 그 성취감. 이 짜릿한 하루하루를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JTBC에서 다채로운 즐거움에 함께 물들어갈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