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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중앙일보를 들어가겠어.”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다. 부끄럽게도 당당하고 솔직하게 임해야 할 지원서 작성 시간까지도 ‘감히’ 중앙일보를 입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1차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서류전형 폐지로 지원자 모두가 응시했던 1차 필기 ‘TOCT’는 내게 그저 시험 삼아 보는 ‘IQ 테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덕분에 누구보다도 편한 마음으로 시험에 응시한 건 당연지사. 남들은 모자랐다고 아우성인 시험 시간이 10여분이나 남았던 것도 모르는 건 죄다 ‘찍고’ 넘어가서다. 운 좋게 턱걸이로 1차를 통과했지만 마음가짐은 그대로였다. 2차가 내 한계라고 생각했다. 직전에 봤던 모 언론사 시험에서도 2차 필기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기에 더 기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시험을 치고 나오며 쏟아지는 수험생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들을 뚫는 건 불가능하단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2차 시험을 통과했다는 문자를 받은 날,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몇 번이고 문자를 들여다봤다. 한계라고 생각했던 2차를 통과하고 나니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나도 어쩌면 이 중앙일보·JTBC의 일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가 생기니 욕심이 생겼고 욕심이 생기니 떨리기 시작했다. 잘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오히려 시험을 망칠까봐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운 좋게 얻은 기회이니 최선을 다하자. 그러나 욕심 부리진 말자. 설령 잘못되더라도 여전히 길은 많다.” 그렇게 3차 카메라테스트와 면접, 4차 취재역량평가, 5차 최종면접에 임했다. 숨 쉴 틈도 없이 지나간 시간들인지라 내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떻게 취재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나는 건, 여름 햇볕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단 것과 그 햇볕이 무색해 할 만큼 내 열정을 뜨겁게, 후회 없이 불 태웠단 사실이다. 전형 과정 내내 평가위원들에게 솔직하고 당당하게 내 생각을 가감 없이 전한 것은 물론이다.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띠링-띠링-’ 대출 스팸 문자와 합격 여부를 궁금해 하던 지인들의 문자에 낚이기 여러 번,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합격 통보 문자가 휴대폰 창에 선명하게 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줄 알았지만 지켜보던 사람들이 많아선지 감동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는데,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그간 거쳐 온 모든 과정을 옆에서 노심초사 지켜 본 어머니의 심적 고통이 나 못 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학교 사회대 건물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와 함께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진짜 '기자'를 향한 긴 여정을 막 시작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에 걸려있는 내 자기소개 첫 문구다. 입사 1년차, 진짜 ‘기자’가 뭔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내 이름 뒤에 기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기가 아직도 쑥스럽다. 하루하루 혼나고 지적받는 게 일상이지만 그나마 만족스러운 건 이 과정들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기자’라는 목표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느껴서다. 물론 아직 멀었다. 이제 겨우 시작점을 통과했을 뿐이다. 처음의 그 간절함과 희망을 비상식량 삼아 묵묵히 여정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홈페이지 자기소개 마지막 문구대로 ‘세상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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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자를 꿈꾸시나요?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여행 끝에 중앙일보ㆍJTBC라는 종착역을 만났다. 아니, 새로운 출발지점에 섰다. … 이제 나는 어떤 기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
지난해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쓴 글입니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떤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좀 더 일찍 이 고민을 시작했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기자 지망생’일 때는 “어떻게 하면 기자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죠.
결국 자기만의 답을 찾는 자가 끝까지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예비 후배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글
작문은 좀 쓰는데 논술이 약하다거나 혹은 그 반대라는 분들이 있는데요. 어떤 글에서든 중요한 건 주제를 충실히 담아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주제를 관통하는 적합한 인용문 활용은 심사위원의 시선을 끄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중앙일보 작문 주제는 예상할 수 없기로 유명합니다. 벌거벗은 금발의 여인이 거꾸로 된 그림 한 장. 보티첼리 작 ‘비너스의 탄생’을 뒤집어 놓고 이와 관련된 글을 써보라 했습니다. 논술 시간에는 난데없이 영어 지문이 등장했습니다. 노르웨이 테러범 브레이빅 연설문 일부를 주고 논리적으로 반박문을 작성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작문은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로 시작했습니다. 소위 여성스러움이라 일컬어지는 여성의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림 속 비너스가 ‘미의 여신’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 당시엔 흰 피부와 금발 머리, 풍만한 몸이 여성스러움을 상징했기 때문이고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이미지, 즉 ‘비너스’를 깨려는 다양한 움직임을 사례로 풀었습니다.
논술 지문을 보니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첫 문장이 정해지자 글이 쉽게 풀렸습니다. “당신의 연설문에 조국을 향한 슬픔과 노여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당신의 일그러진 애국심이 그토록 사랑하는 나라의 국민들에게 얼마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는지 보라”는 식으로 글을 이어갔습니다. 연설문의 논리적 오류를 짚는 부분은 모두 비슷할 수 있기 때문에 차별화된 첫 문단이 중요했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인용문도 잘못 쓰면 독이 됩니다. 식상한 인용문을 썼다가 오히려 개성 없는 글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많은 인용문을 외우기보다, 좋은 글에 활용된 인용문 익히기를 추천합니다.
한계에 도전하는 삶
글 좀 쓰면 신문기자, 말 잘하면 방송기자? 이런 이분법적 구분은 점점 더 의미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중앙일보에서 수습교육을 받았지만 최근 JTBC로 파견됐습니다. 신문과 방송매체를 모두 경험하면서 기자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섣불리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주눅 들지 마십시오.
중앙일보ㆍJTBC는 통합공채를 지향합니다. 준비해야 할 게 더 많은 것 아니냐고요? 아니라면 거짓말입니다. 실무평가에서도 신문 기사쓰기와 방송 리포트 제작을 모두 하죠. 둘 다 잘하면 금상첨화지만, 심사위원이 보고자하는 건 당신의 ‘가능성’입니다. 겁먹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펼쳐보이세요.
지난해 실무평가에서 신문기사와 방송리포트 주제는 각각 ‘남대문시장’, ‘다문화’였습니다. 다문화는 광의적으로 해석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두 가지 모두 ‘사람’으로 풀었습니다. 신문 기사에는 남대문시장에서 반 평짜리 옷가게를 하는 상인, 방송 리포트에는 채식을 하기 위해 혼자 점심을 먹는 직장인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인회의 부당한 요구, 채식주의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고 있다는 것. 개인의 삶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기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매체에 따라 사안에 대한 접근방식이나 강조점은 다를 수 있지만 취재의 기본은 같습니다.
중앙일보와 JTBC에서는 신문기자가 방송 리포팅을 하고 방송기자가 신문기사를 쓰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둘 다 잘 해낸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매일 한계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여러분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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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서 시작해 올해 1월부터는 중앙일보에 와있습니다. 다른 곳에선 하기 힘든 값진 경험입니다. 영상을 만드느라 쫓기던 방송에서와는 또 다른, 깊고 치밀한 '취재의 맛'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면으로만 접하던 선배들을 직접 뵙는 즐거움도 쏠쏠합니다. 그런데 선배들의 공통된 반응이 있습니다. "몇살이니?" 물어보셔서 나이를 말하면 다들 화들짝 놀라십니다. 2011년 입사 당시 저는 서른 살, 게다가 유부녀였습니다. 면접 때 이런 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한 변명들을 잔뜩 준비해갔지만 써먹을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면접관들이 관심을 갖는 대상은 '저'와 제가 쓴 기사였습니다.
2년 전 선배들의 합격수기를 꼼꼼히 읽으며 제가 얻는 것은 용기와 위안이었습니다. 저도 여러분께 그런 존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입사 후 꼭꼭 덮어두었던 자기소개서부터 작문, 실무전형에서 쓴 방송과 신문기사를 열어봤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부끄럽진 않았습니다. 요즘 말로 심장이 쫄깃해질 만큼 열심히 뛰었던 흔적이 묻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떠오르자 오히려 요즘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먼저 '기자들'을 이해하세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기자들은 말에서나 글에서나 중언부언을 싫어합니다. 늘 시간에 쫓기고 한정된 리포트과 지면에 취재한 것을 최적의 형태로 담아내야 하는 직업이 사람을 그렇게 만듭니다. 좋은 거라곤 생각치 않지만, 기자가 되려고 시험을 보실 땐 이 점을 염두에 두시는 게 좋습니다. '주제'가 분명하게 쓰고 말하세요. 그럴려면 늘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많이 보고 듣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적은 양이더라도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언론고시반에 들어 체계적으로 공부하거나, 매일같이 신문을 꼼꼼히 읽거나, 평소에 책을 많이 본 유형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날라리 준비생이었습니다. 다만 몇 개월 전에 시작한 스터디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만나서 무작정 쓰지 마시고 충분히 준비하고 생각해서 쓴 뒤에 서로의 알짜배기만 나눠 가지세요. 나만의 노트를 만드는 건 이미 고전이죠. 저는 문서파일에 복지, 양극화와 같은 현안 별로 논거와 인용할 만한 문구를 수시로 정리해뒀습니다. 가장 많이 참고하는 건 역시 신문의 사설과 칼럼이고, 화제의 책을 발췌독 하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구절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쓰이죠. 작문 문제로 '비너스의 탄생'이 뒤집어져 나왔을 땐 정말 난감했습니다. 노트에 적어둔 "우리가 보는 것은 실재가 아닌 허상"이라는 장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을 징검다리 삼아 "'다 안다'는 착각이 사회적 갈등을 심화한다"로 전환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단 뜬구름은 절대 잡으시면 안됩니다. 숫자와 같은 팩트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쓰고 사회적 현안과 연결 짓는 게 쉽습니다.
준비는 꼼꼼하게, 현장에선 담담하게
8월의 실무평가는 정말 더웠습니다. 더운 만큼 열심히 뛰었습니다. 공무원, 교수 등 알만한 분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찍겠다고 설치는 저를 보며 얼마나 우스웠을까를 생각하면 취재원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흔쾌히 만나주겠다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는 1시간이나 연락이 안돼 저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오느라 휴대전화를 못 받았다고 미안해하며 나타나셨을 땐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기사의 형식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오시면 편해집니다. 방송 기사는 발생 스트레이트보단 기획성 기사, 신문은 길지 않은 현장르포 기사가 좋겠습니다. 몇 개를 꼼꼼히 읽으면서 문장과 인터뷰의 배열, 문단별로 어떻게 기사를 이끌고 갔는지를 차분히 분석해 보세요. 당시 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열심히 취재했는지 보여드리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기에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신선한 주제로 구슬을 잘 엮어내느냐 입니다. 시간 안배는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섭외부터 기사작성까지 결코 쉽지 않은 기본이죠.
면접은 정직과 성의입니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됩니다. 튀려고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자신을 부풀려 말하는 것도 십수 년 경력의 기자 선배들에겐 쉽게 들통납니다. 내가 이 회사와 미디어 산업에 얼마나 관심있는지를 보여 줄 기회도 이 때입니다.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정리해보는 것도 마음의 안정엔 도움이 되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너무 다 아는 얘기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왜 이 만만치 않은 일을 해야하는 지를 분명히 아는 걸겁니다. 모두가 똑같은 이유는 아니겠지요. 저도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셔서 같이 답을 찾을 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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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기자 할 만 해요?", "누나, 기자 한 번 해볼까 하는데…"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딱 잘라 말합니다. "하지마"라고. 그만큼 기자는 간절한 바람과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직종입니다. 하나의 일자리로 보기엔 몹시 고단하고, 생각보다 빛이 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 후기만큼은 진심으로 기자가 되고 싶은 후배분들이 읽기를 바랍니다. 서두가 길었죠, 시작합니다.
"현장에 가보고 싶다, 아니 그 곳에 있고 싶다"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때 아홉살이었습니다. 9.11 테러가 나던 밤은 외국어고 준비를 하던 중3때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있던 때는 고3의 어느 낮이었습니다. 모든 순간에 간절히 원했습니다. 현장에 가보고 싶다. 그 열망은 날이 갈수록 더 커졌습니다. 천안함이 침몰하고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던 날에도 '나는 왜 저기에 있지 않을까'라는 발칙하고 위험한 한탄을 했습니다. 현장. 찬반이 맞부딪치고 사람들의 땀이 아무렇지 않게 내 팔뚝에 묻어나며 귀가 멍멍해지도록 사이렌이 울리는, 그 현장의 매력.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쌈닭의 순화? 아니 진화!"체력, 전투력이 적정수치를 넘어갈 정도로 극도로 강해져있는 제게 처음으로 떨어진 부서는 다름아닌 스포츠문화부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문화팀. 처음엔 깜짝 놀랐습니다. 당연히 사회부로 갈 줄 알았고, 설령 이 부서에 온다할지라도 스포츠를 담당하겠거니 했습니다. 담당 파트는 미술과 클래식 공연. 정적인 것의 정점을 찍는 부서였지요. 쌈닭은 순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더 강해졌습니다. 방송에서 미술과 클래식은 단연 '지루하니 빠질 수 밖에 없는' 1순위 기사. 결국 이걸 어떻게하면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더욱이 독기를 품게 됐습니다. 9개월 동안 한없이 굴리고 비틀고 꼬집어내던 수많은 아이디어와 발상은 담백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지금도 기사를 기획하고 화면을 구성할 때마다 문화부의 하루하루에 다시금 감사하게 됩니다.
"여느 사회부기자와는 다르다"경찰서 세면대 위에 발을 올려 씻고, 몰래 머리를 감은 다음 핸드드라이어에 물기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한움큼 가져다 대기 일쑤. 이제는 영웅담이 된 아름다운 사회부 기자를 원하신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하지만 JMNET, 특히 이제 막 발돋움을 한 JTBC의 사회부 기자를 하고자 하신다면 영웅담 한 권이 아닌 한 60권짜리 전기를 만들 생각은 하셔야 합니다. 타사에 비해 훨씬 업무 강도도 세고, 출입처에서 대우도 못받습니다. 다른 언론사의 견제도 심하고, 외롭기도 지지리 외롭습니다. 그래도 딱 하나, 내가 원하는 기사를 바라는 형식대로 쓸 수 있다는 극장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도 마음껏 해볼 수 있습니다. 내 작품을 하나 둘 쌓아나가는 것이죠. 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저도 느지막이 깨닫게 됐습니다.
제 인생관은 딱 하납니다. 재밌게,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자. 다행히도 몹시 하고싶던 기자일을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운도 실력도 따라야하겠죠. 항상 긍정적으로 도전하십시오. 글을 쓸 때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재밌게 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즐거워하는 자를 따라갈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서두에서 너무 독하고 무서운 선배 이미지가 콕 박혔나요? 제 후배가 되시면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일하는 법은 꼭 익혀가실 겁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글 많이 쓰고 상식 달달 외우겠어요. 이 순간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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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물
벌써 5시간째다. 어제, 그제까지 생각하면 벌써 스무시간, ‘그’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 남자친구도 이렇게 기다려 본 적 없다. 국무총리실 전 직원 J는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의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자다.
지금은 3월 말, 수습 딱지는 갓 떨어졌다. 수화기 너머 선배는 “그래도 날이 좀 풀렸지? 조금만 고생하렴” 하시는데. 복도식 아파트 꼭대기층은 아직 추워요 선배…. 콧물이 쪼르륵 흐른다. 땡땡 언 엄지 발가락은 누가 떼어가도 모르겠다.
버려진 신문지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오래 버티려면 뭐라도 뒤집어 써야한다. 오늘도 한 장의 지면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동료ㆍ선배들을 떠올리며, 경건하게 타지(물 먹은 지면 위주로)를 예쁘게 뭉쳐서 양발에 씌웠다. 따뜻하다! 노숙인들의 지혜에 새삼 감동한다. J는 어디로 증발한 건지 돌가루 날리도록 머리를 굴려봐도 모르겠다. 잠이 온다. 엄마가 보고싶다. 아니 J가….
◇눈물
7월 취재차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학가협(학교폭력 피해자 가족모임) 캠프에 합류했다. 눈물이 많아서 평소에 드라마도 잘 못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인 가연이네 엄마, 아빠를 만나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연엄마가 날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마주 서 있었다. 가연이가 겪은 고통, 엄마의 애타는 심정이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마음을 나누니 인터뷰도 순조로웠다. 마음만 앞선 초벌 기사는 데스크의 손질을 거쳐 가슴 뭉클한 기사로 재탄생했다.
다음 날 새벽 6시 반. 잠옷 바람으로 현관을 뛰쳐나가 배달 된 신문을 펼쳤다. ‘집을 나설 때마다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걱정된다’ ‘엄마는 아이 앞에서 울지도 못한다’ 등 생생한 피해 가족들의 목소리가 지면에 담겼다. 눈 밑이 다시 뜨거워졌다. ‘누군가 이 기사를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면, 조금이라도 세상이 바뀌었으면….’
◇이 모든 것은
딱 3개월 뒤, 여러분의 이야기가 됩니다. 눈물, 콧물 유난스러운 듯 썼지만 생각보다 재밌고, 상상보다 어렵습니다. 저 뿐 아니라 선배, 동기들 모두 한번쯤 겪은 일입니다.
언론사 중에서 왜 중앙일보ㆍJTBC, JTBCㆍ중앙일보인가 물으면, 첫째 좋은 선배들이 많습니다. 둘째 비전이 좋습니다.
이제 특종의 짜릿함도, 낙종의 절망도 여러분의 몫이 됐습니다. 2년 만에 맞는 후배들 얼굴이 벌써 궁금합니다. 준비는 되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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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란 꿈을 품고 ‘중앙일보•JTBC’를 찾아준 미래의 후배님들. 반갑습니다. 보도국 정치부의 막내 이윤석입니다. 오랜 시간 막내란 타이틀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곧 후배님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설렙니다.
아마 다른 동기들이 전형과정을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첫 글은 2년 전 회사에 입사하고 선배들에게 보냈던 자기소개서입니다. 제가 어떻게 기자란 꿈을 갖게 됐는지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글은 한 매체의 부탁을 받고 면수습 때 썼던 글인데, 수습기자의 열혈취재기(?)를 기록했습니다.
기자, 분명 매력적인 직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매력만큼이나 쉽지 않은 직업입니다. 미래의 후배님들!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하루 빨리 현장에서 후배님들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만 스물 넷, 부족한 만큼 발로 뛰는 ‘슈퍼수습’이 되겠습니다!”
2001년 4월 9일 오전. 제 꿈이 정해진 날입니다. 여느 때처럼 화장실에서 신문을 펼쳤습니다. 스포츠 섹션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정말 우연처럼 평소에는 안 읽던 사회기사 한 편을 읽게 됐습니다. 그 기사는 이른바 ‘난곡 리포트’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탐사기획보도’였습니다. 흥미로웠습니다. 리드부터 모든 게 맛깔스러웠습니다. 기사를 읽고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후속 보도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기자가 되어 세상을 오늘보다 좀 더 나은 내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기자라는 꿈을 품은 후 고비도 많았습니다. 대학 신입생이던 2006년 3월. 검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인터넷 신문사에 학부모를 성추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모 중학교 교사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그 교사가 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사가 허위라고 진술하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했습니다. 달콤했지요. 그러나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으로서 제가 취재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힘든 길을 택했습니다. 다행히 제게는 피해자의 전화통화 녹취록 등 상당수 증거자료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확정 판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제 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추억도 많았습니다. 특히 ‘중앙일보 대학생 탐사기획 기사공모전’에 당선돼 2007년 1월부터 5개월 동안 인턴기자로 활동한 경험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당시 신매체본부(現중앙SUNDAY) 정치부에 배치돼 인턴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그 누구보다 치열했습니다. 대선후보들의 측근을 분석하는 탐사기획 업무를 맡았을 때는 며칠 밤을 홀딱 새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을 정도입니다. 하루하루가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당시 존경하던 선배들이 제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슈퍼인턴’이었습니다. 더 열심히 일을 하라는 의미였겠지요. 이제 저는 더 이상 ‘슈퍼인턴’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부족한 만큼 발로 뛰는 ‘슈퍼수습’이 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9월.
선배들에게 보냈던 신입사원 자기소개서.
“당당히 ‘기자’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매일 아침 5시 30분. 시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두 눈이 번쩍 떠진다. 머릿속에는 온통 ‘오늘은 어떤 메모를 할까?’라는 고민이 가득하다. 출입처의 하루 일정과 어떤 기사를 쓸지 1진 선배한테 보고하는 걸 ‘아침메모’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메모의 압박’이란 말이 생겼을까. 특히 감사원 같이 철저하게 ‘닫힌’ 출입처에 있다 보면 주도적으로 취재해서 메모를 작성하기란 정말 어렵다.
오전 6시 40분. 꽁알거리며 노트북을 두들긴다. 주요 일간지를 펼쳐놓고 출입처 관련 기사를 체크한다. 진한 커피는 필수. 생각해보니 감사원에 출입한지도 벌써 3개월째다. 나는 갓 수습을 끝낸 1년차 기자다. 중앙일보 JTBC 통합공채 1기로 입사했고, 현재 JTBC 보도국에 배치돼 정치부 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는 중이다. 나이는 스물다섯.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서툴지만, 그래서 끈질기기도 하다.
감사원에 처음 배치된 건 2012년 1월 중순. 하필이면 출입 첫 날 정말 세게 물을 먹었다. 대입 농어촌특별전형 부정 감사 결과를 모 신문이 단독 보도한 것이다! 감사원 업무를 파악하기도 전에 취재를 시작했다. 다행히 모든 언론이 소식을 전했지만 새로운 속보는 없었다. 1진 선배는 출입처 배치 첫 날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로했지만, 나는 더 파고들었다. 첫 날부터 물 먹은 걸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다.
취재 네트워크가 변변치 않았기에 방법은 단순했다. 감사원의 조사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대학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어떤 서류를 제출했느냐?”, “감사관들이 뭘 물어봤느냐?”고 물었다. 그러기를 이틀째. 한 가지 ‘팩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감사원이 발표한 농어촌특별전형 감사결과 외에도 대학 편입학 부정에 대한 감사도 했다는 것이었다. 복수의 대학이 감사원에서 편입학 서류를 조사했다고 인정했다.
이 얘기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집중 취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용을 알 만한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명단을 전부 뽑아놓고 전화를 돌렸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꺼질 때까지 6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 마침내 단서 하나를 건질 수 있었다.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 몇 군데서 편입생 10명 가까이가 부정행위로 적발됐다는 것이었다.
첫 단추를 끼우고 나니 취재에 속도가 붙었다. 기자가 내용을 알고 질문하면 사정당국 관계자들이라도 마냥 잡아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줄줄이 정보가 나왔다. 부정 편입학 의혹을 받는 대학이 3곳으로 모두 서울 소재 유명 대학이고, 체육특기생 부정 입학도 적발됐다는 팩트 등을 건질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대학교 이름과 학과, 그리고 일부 학생의 신상정보까지 확인했다. 선배들이 말하는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렇게 쌓인 정보를 꿰서 기사로 쓰기 시작했다. 물론 감사원의 '엠바고(embargo•보도유예)' 요청이 없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런데 한창 기사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원 공보실이었다. 공보실 직원은 “대학 감사 내용을 취재하신다고 들었는데 내일 오후 2시로 엠바고 걸었으니 참고해 달라”고 했다. 말이 “참고해 달라”지 '보도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일단 1진 선배께 보고를 드렸다. 급히 부장과 국장 등 높은 분들께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그 결과 JTBC와 중앙일보는 감사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스와 신문 지면을 통해 가감 없이 보도했다. 내부 회의에서 감사원의 엠바고 요청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엠바고는 취재원이 사전에 내용을 설명하면서 보도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를 모든 언론사가 받아들여야 효력을 갖는다. 물론 그 전제는 보도유예가 공익에 도움을 주는 경우에 한해야 한다.
감사원은 취재를 모두 마친 기자에게 일방적으로 엠바고를 통보해 보도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의도였다고밖에 볼 수 없는 셈이었다. 당시 나는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감사원의 위험한 발상’이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 지면에 취재후기를 썼다. 꽤 큰 반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얼떨결에 수습 신분으로 사내 특종상도 받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6개월이라는 짧은 수습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뜨거운 취재현장, 뛰어난 선배들과 훌륭한 동기들까지. 그 사이에서 즐거운 일도 많았고, 지치고 힘든 일도 많았다. 때로는 절묘한 외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 모든 경험은 내가 처음 입사해서 ‘수습’이란 타이틀을 달았을 때보다 나를 더 성장시켰다. 선배들은 말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그렇다. 수습을 뗀 지금. 당당히 ‘기자’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기대된다.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2012년 3월.
‘수습’을 면하고 ‘기자’로 첫 발을 내딛었던 날, 어느 매체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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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이었죠. 김연아 선수가 2년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완벽한 연기로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외신도 ‘피겨 여왕’의 귀환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연아 선수 본인 “솔직히 재능은 타고난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타고난 것도 노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겠죠. ‘타고난 기자’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노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기자’란 이름을 가지긴 어려울 겁니다.
# 기본기에 충실하라
‘점프의 교과서’로 불리는 김연아. 정확한 에지를 구사하기 때문인데요. 김연아는 바깥쪽 엣지와 안쪽 엣지에 따라 구분되는 러츠, 플립 점프를 정확하게 구분해 내는 유일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미 초등학교 때 트리플 점프 5종을 완성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것이죠.
언론사 시험에서 기본은 바로 ‘글쓰기’. 보통 1200~1500자 안에서 마무리를 지어야하는 논술과 작문에서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도 글쓰기의 기본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로 ‘단문’.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며 수많은 기사를 읽고, 스크랩해 보셨을 텐데요. 선배 기자들의 글을 보면 주술어가 애매하거나 지나치게 호흡이 긴 문장은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아무리 긴 기사도 문장 하나하나는 짧게 툭툭 치는 ‘스타카토(staccato)’ 스타일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수식어를 줄이고 담백하게 쓰도록 노력하세요.
# 기술과 예술을 함께 공약하라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완벽하게 뛰었다고 해도 아마 김연아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김연아는 마오에게는 없는 ‘표현력’이 있기 때문이죠. 피겨스케이팅은 기술점수와 예술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가립니다. 김연아가 세계 최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두 가지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문형 글쓰기가 기술이라면 그것에 가미되는 각종 양념이 바로 예술성이겠죠. 적절한 어휘 선택, 문장 구성과 배열 등이 글쓰기의 표현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바로 ‘가산점’이 부여되는 것이죠.
또 한 가지. 중앙일보 작문 스타일은 익히 많은 얘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기발한 문제들로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로 유명하니까요. 이곳에서 바로 여러분의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세요. 단, 작문이더라도 글 요소요소에 상식(팩트)을 적절하게 배치해 주는 것도 중요한 요령입니다.
# 강심장을 가져라
이번 세계피겨선수권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심판으로부터 플립 점프에서 ‘롱엣지 판정을 받고 감점을 받았는데요. 프리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점프를 뛰어야 하기에 긴장될 법도 하지만 김연아는 오히려 더 당당했습니다.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심판석 앞쪽에서 보란 듯이 뛰는 여유도 보였습니다.
전형 과정에서 면접은 실무면접 등 총 2~3회가 있을 겁니다. 각 단계마다 면접 방식이나 스타일은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자신감’.
수십 년 기자 생활을 한 선배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여러분은 당연히 당황할 수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이 바로 자신감입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면접관과 시선을 맞춰가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세요. 적당한 제스처, 살짝 앞으로 내민 몸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여러분의 자신감이 드러납니다. 자신을 꾸밀 필요도,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어느새 입사한 지도 1년하고도 반이 지났네요. 여러분 덕에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다시 치열하고 간절했던 그때의 마음을 되새기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후배 여러분, 현장에서 뵙겠습니다.